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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봄여행. 밤기차 타고 서울에서 여수까지 그리고 하동으로.

 

나이를 먹어서 철이 들었는지,

부쩍 엄마에게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3월이 시작되고, 회사앞 커피가게에서 벚꽃엔딩이 흘러나올때.

2년전 선배들과 친구들과 큰 차타고 벚꽃보러 하동을 갔는데 하필 그 전날 비가 내려서

꽃은 하나도 없는 쓸쓸한 나무만 본 웃기는 기억이 떠올랐고.

내 반드시 꼭 하동의 벚꽃을 보러가리라 생각을 했고, 엄마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았고.

이래저래 해서 여행사에서 파는 기차-버스 연계 상품을 택해서 여행을 가기로 ㅎ

 

해외고 국내고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가기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 함께하는 여행객들이 모두 점잖고 소녀같았고, 차로 이동시켜주는 것 외에는 모두 자유시간이라 편하고 좋았다.

 

철도닷컴(http://www.cheldo.com) 에서 예약했고 여행사는 퍼시즌투어 인가?..그랬다.

금요일 밤기차타고 내려가서 여수 향일암 일출을 보고 하동으로 이동해서 쌍계사, 십리벚꽃길, 화개장터 구경하고

남원으로 이동해서 광한루 구경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

가격은 좀 비싸다 싶은 8만9천원.

(막상 기차표 값이랑 이동시마다 버스태워주고 편히 다녀온걸 생각하니 나쁘지 않은 가격)

 

퇴근하고 밤기차를 탔는데.

이건 무지무지 피곤하다 ㅠ. 기차안은 환하고, 역마다 사람들이 들고 나기 때문에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는데

읭? 우리 엄마는 잘 자고 있다 ㅋ

 

5시간여 걸려서 여수엑스포 역에 도착을 하니,

버스기사 겸 가이드 아자씨가 피켓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탑승해서 아자씨의 친절한 여수소개를 들으며 ㅎ 어두운 여수 새벽거리를 고불고불 돌아... 갔겠지.

버스에서는 잠이 잘와서 푹자고 나니 향일암 이었다.

 

어슴푸레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할때까지 버스안에서 쉬다가 향일암으로 출발했다.

향일암 가는 길도 은근 가팔랐는데 운동매니아 엄마가 금오산 정상으로 나를 안내하는 바람에

잠도 덜깨어 산을 탔다. 힝ㅜ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막 돌산이고 높은데 엄마가 막 데려갔......

막상 정상에 오르니 호수만큼 잔잔한 남해바다가 사방천지에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해는 뜨긴떴는데 해는 못봤지만ㅜ 마음이 고요해 지는 시간.

 

내려오면서는 자유조식을 하면 되어서 근처 식당에서 게장백반을 주문해 먹었다.

호오 꿀맛!

 

아침도 먹었겠다. 버스에서 또 기절해서 자고 있으니 하동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도 꽃이 만발한 남도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으나, 밤기차의 영향으로 엄마랑 번갈아 졸면서 갔다.

벚꽃피는 4월초의 쌍계사 가는 길을 너무너무 막혔는데 이렇게 길 막힐때,

버스타고 느긋하게 벚꽃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사 통한 여행의 장점!

가이드님이 쌍계사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화개장터 근처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드디어 벚꽃타임!!

귀여운 우리엄마 뜀박질 시키고, 딸내미는 더 높이 뛰고.

엄마손 잡고 벚꽃 터널을 지난다.

꽃잎이 비처럼 나리고, 길가에는 간혹 새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다.

빨간색 매화꽃이 숨바꼭질 하듯 벚꽃사이에 피어 있는 이 봄의 마지막 벚꽃을.

무려 한시간반동안!! (ㅜ 아 나중엔 조금 힘들더라) 만끽했다.

 

 

있어야 할건 다 있고 없을건 없다던 화개장터는.

정말 있을것도 없는; 관광시장 이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은 스킵.

 

다들 오래 걷느라 피곤했는지 버스에서 다같이 꿀잠 자는동안 버스는 남원에 도착했고.

하동보다 더 많이. 더 활짝. 떨어지지 않고 피어있는 남원의 벚꽃을 보며

엄마랑 나는 광한루 대신 밥을 먹었다.

광한루 근처 즐비한 추어탕집 대신 20년전통이라고 하는 반야돌솥밥에 들러 맛있게 냠~.

 

가이드가 우리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을 잘못 알아 1시간이상을 기다리긴 했지만 ㅜ

간장게장처럼 꽉차게 즐거웠던 여행.

 

우리는 평생 살 것 처럼 살지만, 실은 한치앞을 모르는데,

엄마랑 이렇게 손잡고 여행할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이렇게 활짝 핀 벚꽃을 오래오래 볼 수 있는 날이 몇일이나 더 있을까 싶다.

잘 하고 살자. 엄마 기운있을때 나 돈있을때 더 많이 놀러다녀야지!!

 

덧. 무박은 진짜 힘들긴 하더라. 체력방전ㅜ